장학사가 바로서야 교육이 산다
서울시교육청의 각종 이권비리 의혹에 이어 교육전문직(장학관·장학사)들의 뇌물수수로 교육계의 고질적 비리인 장학사 매관매직이 도마에 올랐다. 교육계를 대표하는 장학사의 위신이 땅에 곤두박질 치면서 학생, 학부모들에게 낯을 들고 다니기 힘들게 됐다며 장탄식도 나오고 있다.
장학사 제도가 교육계 비리의 핵심 고리로 떠오르자 일선 교사들은 ‘곪았던 환부가 터진 것’이라는 반응이다. ‘장학사 천국’이라는 말을 낳으며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돼온 교육청의 비리사슬 고리를 이참에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급기야 대통령이 나서 교육비리 척결을 요구하자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과 시·도교육감들은 25일 교육전문직 임용제도 개선 등 인사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다며 ‘교육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장학사가 바로 서야 교육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장학사가 부패하면 교육도 부패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학교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장학사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1. 장학사 매관매직이 불거진 계기는
장학사에게 인사상 각종 특혜가 주어지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교육전문직들은 일선 학교의 교사들보다 당연히 인사상의 혜택을 누리고 있고 교육청 내에서도 교육행정직보다 우대받고 있다. 여기에 장학사시험제도의 특성이 매관매직을 부추긴다.
1, 2차 시험이야 객관적인 평가가 나올 수 있지만 3차 시험의 경우 교수나 교장 등의 심사단이 주관적인 평가를 하는 만큼 이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일선 교육청의 한 장학관은 “전체 승진대상자 중 1,2차 성적 상위 70∼80%는 1,2차 성적에 따라 결정되지만 성적 하위 20∼30%는 3차 면접 및 인성평가에서 성적이 뒤바뀔 여지가 많다고 전한다.
여기에 서울시교육청의 조직구조에서도 나타나듯 교원인사 등 핵심보직에 학연·지연 등 선후배로 얽혀 있는 교육전문직들이 똘똘 뭉쳐 서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라인’을 형성되고 있는 것도 매관매직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물론 이 같은 조직메커니즘은 교육감 선거가 낳은 폐해라는 분석이 있다. 어떤 후보가 교육감으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만큼 특정후보 특정라인에 자신의 미래를 걸게 되고 이 같은 끈끈한 연결의 끈은 매관매직을 수월하게 해 상납의 고리가 라인의 윗선에까지 뻗쳐나갈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2.장학사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전체 직원 중 교육전문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일선 학교와 교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은 바로 이들의 끈끈한 연결고리에서 나오는 만큼 실질적인 ‘파워’는 교육행정직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교육청의 조직구조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서울시교육청을 예로 들면 교육전문직은 전체 직원의 6.1%에 불과하지만 노른자위 보직은 바로 이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부 4개 실·국장(기획관리실장, 교육지원국장, 평생교육국장, 교육정책국장) 중 평생교육국장직과 교육정책국장직을 바로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중 교육정책국장은 서울시내 공립학교 교원 5만여명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핵심 보직이다. 또 4개 실국 내 15개과 중 절반이 넘는 8개과의 과장직을 교육전문직이 차지하고 있다. 교육정책국 내 4개과의 과장직은 모두 독식하고 있고 평생교육국 4개과 중 3개과를 이들 교육전문직이 차지하고 있다.
3. 장학사 시험에 목을 매는 이유는
책임은 작고 권한은 큰 업무 특성이 많은 교사들이 장학사 임용시험에 목을 매게 만드는 이유다. 서울 강남 3구처럼 특A급 노른자위로 꼽히는 학교의 교감·교장으로 가기 위한 필수코스로 장학사 경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장학사가 비리의 중심이 된 것은 끗발 있는 지역 교육청 관료들과 인맥을 쌓기에 좋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성적을 조작, 매관매직을 해서라도 장학사 자리를 차지하려는 교사들이 나타나는 이유다.
4. 장학사 매개로 한 상납구조는
장학사들은 일선 교사들을 장학사 시험에 합격시켜 줄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수천 만원의 뇌물 중 일부만을 커미션으로 챙기고 나머지는 인사권을 쥔 윗선에 상납하는 구조다. 교육자치제 시행으로 선거에 공이 큰 측근을 논공행상에 따라 시교육청 주요 국장직과 과장직에 장학관들로 채워 ‘장학관들의 천국’을 형성한다. 학연·지연·파벌로 연결된 교육전문직들이 똘똘 뭉쳐 무소불위의 권력을 독점하며 돈을 받고 성적까지 조작해 장학사 직위를 파는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5. 승진에 장학사가 유리한 점은
교감과 교장이 되기 위해 필요한 필수 재직기간에 차별이 있다. 일선 교사의 경우 교감은 재직기간 20년 차부터, 교장은 24년 차부터 될 수 있다. 그러나 장학사로 5년 이상 재직하면 초등학교는 19년 차, 중·고교는 17년 차부터 교감이 될 수 있다. 또 장학사들은 일반 교사가 치러야 하는 교장·교감 승진시험 없이 자격연수만 받으면 일선 학교의 교장·교감으로 부임할 수 있다.
실제 일선 교사들이 교감·교장 자리에 오르는 데 보통 50대에나 가능하지만, 장학사 코스를 밟으면 40대에도 교감·교장으로 고속 승진할 수 있다. 또 장학사 출신 교감·교장의 비율이 평교사 출신보다 2배 가까이 높아 장학사 경력을 갖는 순간 교감·교장으로의 출세의 길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셈이다.
6. 장학사의 권한은
장학사들은 각 시도교육청에 소속돼 일선 초·중등학교 교육 전반에 대해 지원활동을 벌인다.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뿐 아니라 생활지도, 학력평가, 방과후학교 등 교육 전반에 대한 기본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 일선 교사들의 학습자료 개발, 각종 교사연수 프로그램과 학생·학부모 상담 프로그램 등을 개발·운용·지원하기도 한다.
여기에 교과부에서 시달한 교육정책을 일선 시도교육청에 집행하는 채널 역할을 담당하고 국회 시의회 교육위원회 등 행정감사에 대한 각종 자료준비와 대응활동을 펼친다. 학교폭력이나 교원비리 등 일선 학교에서 발생하는 각종 현안들에 대한 실태 파악과 대책 마련도 이들의 역할이다.
7. 장학사 장학관 등 교육전문직 규모는
2월 말 현재 전국의 교육전문직은 장학사 3179명, 장학관 969명 등 모두 4148명이다. 전국의 교육행정직 공무원이 국가공무원 5011명, 지방공무원 6만1546명 등 모두 6만6557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전체 공무원(교육행정직+교육전문직) 7만705명의 5.9%가 교육전문직인 셈이다.
이 중 이번에 교육비리의 온상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서울시교육청의 경우엔 교육전문직이 442명으로 전체 직원(7240명)의 6.1%를 차지하고 있다. 교육전문직들은 대부분 전국 시도교육청에 근무하지만 일부는 교육과학기술부 본부에서 교직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8. 장학사 선발 방식은
장학사가 되는 방법은 두가지 길이 있다. 일반적인 방법은 평교사에서 장학사 임용시험을 통과하는 경우다. 일선 교사 중에서 초등학교 13년, 중·고등학교 15년 이상 교육경력에 최근 2년간 근무성적이 ‘우’ 이상이면 자격대상이 된다. 평가방식은 1차시험은 객관식, 2차시험은 주관식(논술형), 3차 시험은 면접 및 인성평가로 이뤄지는데 1,2차 시험의 경우 성적에 따라 평가결과가 분명히 나오지만 3차 시험은 면접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다른 방법은 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한 후 시도 교육청 장학사로 이동하는 경우다. 장학관은 장학사보다 높은 직급이다. 통상 장학사들이 일선 학교의 교감과 교장을 거쳐 다시 시도교육청의 장학관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9. 일본 등 외국의 장학사 제도는
전문직 임용제도 개선방향과 관련 우리와 교육제도가 유사한 일본식 장학제도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우리 장학사제도는 일본에서 하던 것을 차용해 따라 하는 일본식 제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장학사제도가 문제가 되자 제도를 대폭 개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장학사가 교장·교감 승진시험 없이 자격연수만 받을 수 있는 데 비해 일본은 엄격한 잣대와 자격요건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용제도 개선안은 4월까지 마련되며 장학사의 교장·교감 진출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경우 인사제도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10. 장학사제도 전면 개편 방향은
25일 교과부가 발표한 교육비리 근절대책의 핵심은 교육전문직 교장·교감 순환 인사체계 등 현행 임용제도를 전면개편해 고질적인 인사비리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교장 임용제청 사전심사 기능을 강화해 9월 정기인사부터 비리관련자를 제외하는 등 임용 시 사전점검기능을 강화한다.
또 단위 학교장의 자율역량 강화 정도에 따라 교육청에 과도하게 집중된 교육공무원 인사권(근무평정, 전보권 등)도 단위학교로 위임된다.
교육청은 차후 교육전문직이 교장직으로 아예 나가지 못하거나 횟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임용제도를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출처: 문화일보; 정충신·송길호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