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취업
고학력 청년백수 200만 시대
오우해피데이
2008. 9. 30. 16:54
[고학력 청년백수 200만 시대] 그들은 어디서 뭘 하나 | |||
중소기업 들어가느니 차라리… ‘자발적 백수’ 택한 젊은이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1동 사육신공원 길 건너편 일대. 한강대교와 노량진역 사이의 이 지역이 그 유명한 ‘노량진 고시촌’이다. 하루 유동인구 7만명에 달하는 이곳엔 각종 학원과 고시원, 독서실, 식당들이 밀집해 있다. 9급ㆍ7급 공무원시험과 경찰공무원시험, 교원임용고시 등을 준비하는 이들이 이곳의 상주 인구다. 광복절 연휴 직후인 지난 8월 18일 오후, 평일인데도 이곳에서 젊은 남녀를 만나긴 어렵지 않았다. 어떤 이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독서실을 나와 편의점에서 과자를 샀고, 또 다른 이는 배낭을 멘 채 학원 앞에 서서 교재를 뒤적였다. 똑같은 티셔츠 차림으로 손 잡고 걸어가는 ‘고시생 커플’도 눈에 띄었다. 고시촌 골목에 있는 한 할인마트 주인은 언덕 쪽을 가리키며 “저런 데 집이 있을까 싶은 곳에도 다 고시원이 들어차 있다”며 “이렇게 고시원이 많아도 한창 땐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많이 배운 젊은 백수’가 늘고 있다. 지난 8월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7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2008년 7월 현재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257만6000명.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8.1%나 증가한 수치다. 고졸 학력 비경제활동인구 증가폭(0.9%)의 9배에 이른다. 같은 기간 20대 비경제활동인구도 226만명에서 232만2000명으로 2.8% 늘어나 조사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가장 의욕적으로 활동해야 할 시기에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젊은이가 폭증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들은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노동을 거부 혹은 유예하고 들어앉은 이유는 뭘까? ‘일하지 않는 20대’를 사회로 끌어낼 묘책은 없는 걸까? 고학력 청년백수 200만 시대, 통계의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찾아나섰다. 2006년 10월 1일 2006 하반기 서울시 공무원 필기시험이 치러졌다. 932명 모집에 전국에서 15만1150명이 몰렸다. 경쟁률은 162대 1. 몰려든 수험생에게 시험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서울시는 시내 143개 중·고교에 4698개의 교실을 빌렸다. 시험감독 수당과 학교 임차료로만 10억원 이상의 예산이 집행됐다. 철도공사는 이날 새벽 5시10분 부산발 서울행 특별 KTX를 편성했다. 서울 근무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몰려든 수험생이 전체 응시생의 44%에 이르렀다. 지난 5월 행정안전부가 일반직 지방공무원 1만명 감축계획을 발표했다. 공무원 감축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당장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생을 일컫는 말)’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4년제 대학생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시험 준비 중인 학생은 응답자의 25.7%로 전년도(32.4%)에 비해 6.7% 포인트 감소했다. 부산 서면의 모 고시학원 9급 공무원반 수강생은 지난해의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방공무원이란 하나의 직업을 놓고 2년 반 새 벌어진 풍경이 ‘하늘과 땅’ 차이다. 2년 전 15만여명이 응시, 사상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던 서울시공무원 시험 응시생은 올해 5만5000명으로 크게 줄었다. 경쟁률도 48.8대 1에 머물렀다. 이유는 단 하나, 새 정부의 공무원 감축 계획에 따라 더 이상 공무원이 ‘철밥통’으로서의 매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 안 하는 20대, 갈수록 늘어난다 취업자 작년보다 15만명 늘었지만 20대는 12만명 감소 취업준비생도 16% 늘어 61만명… 비경제활동 20대 232만 지난 8월 13일 통계청은 ‘2008년 7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7월 현재 전체 취업자는 2390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5만3000명 늘어났다. 그러나 취업자 증가 폭(그 달의 취업자 수를 전년 동기 취업자 수와 비교한 것)은 작년 7월 30만3000명에서 올 1월 23만5000명, 2월 21만명으로 떨어진 후 3월부터 내리 5개월간 20만명을 넘지 못했다. 2003년 8~12월 이후 최대 감소세다. 특히 20~29세 취업자 수(395만5000명)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1만8000명이나 줄었다.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3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호언장담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올 3월 그 수치를 10분의 1 수준인 35만개로 줄였고, 7월 들어 다시 20만개로 하향 조정했다. 통계청 발표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비경제활동인구 관련 자료다. 비경제활동인구란 노동활동이 가능한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나 실업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일컫는 말. 7월 현재 우리나라의 비경제활동인구는 1494만9000명으로 취업자 수의 60.5%에 이른다. 비경제활동인구의 연령별·학력별 분포도 흥미롭다. 전체 대상자 중 20대(232만2000명)와 대졸 이상(257만6000명)의 증가율이 두드러지는 것. 젊고 많이 배운 이들의 노동시장 이탈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그래픽 참조> 비경제활동인구 편입 이유에 “취업 준비”라고 응답한 사람도 지난해 52만6000명에서 올해 61만명으로 16.1% 증가했다. 증가율로만 순위를 매기면 단연 1위다. 우려의 목소리들 전문가 “건설·서비스업 침체, 투자·소비 부진 등이 복합 원인”
“국가가 나서 유급 인턴 고용하고 예산 지원을” 정부책임론도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수년째 3%대를 유지하고 있다. ‘실업률 3%’는 이론상으로만 보면 완전고용에 가깝다. 그러나 이 수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통계청은 최근 4개월간 구직활동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업률을 조사한다. 때문에 아예 구직활동을 하지 않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는 ‘실업’으로 보지 않고 누락시킨다. 실제로 통계청이 2003년부터 반기별로 조사해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취업 준비생은 2004년 30만명, 2005년 40만명, 2006년 50만명을 돌파하며 매년 수직상승 중이다. 취업 준비생이 늘고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실업률은 지난해 상반기 3.4%에서 올 상반기 3.25%로, 같은 기간 실업자는 82만1000명에서 78만4000명으로 줄었다. 지난 6월 기획재정부는 이례적으로 브리핑을 갖고 노동시장 경색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임종룡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전반적으로 고용환경이 좋지 않은 데다 상반기 화물연대 파업으로 1만~2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지난해 6월 일자리가 31만5000명을 기록, 연중 최고치에 달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감소세가 크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최근의 고용불안과 청년실업 문제는 제조업 중심의 고용 없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핵심이 되는 건설·서비스업 침체, 유가·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투자와 소비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7월 2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회 경제정책포럼에 참석한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청년실업을 해소하려면 정부 부처가 유급 인턴을 고용하는 등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해 이 문제에 관한 정부책임론을 강조했다. 청년 실업 주범은 자신? “첫 단추 잘 꿰야…” “안정된 곳 입사할 때까지…” 도전보다 ‘편하고 폼 나는 일자리’만 좇는 경향 그러나 비경제활동인구가 1500만명에 육박하고 한창 일할 나이에 취업전선에 뛰어들기를 거부하는 젊은이가 200만명을 넘긴 현실엔 그저 ‘잘못된 정책과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리기 힘든 뭔가가 있다. ‘정직원 채용’을 전제로 한 대기업 인턴을 거치고 최종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대학생 이모(24)씨는 “요즘 대졸 구직자들은 취업에서도 ‘첫 단추’를 잘 채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름 없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면 나중에 좋은 곳으로 이직할 확률이 그만큼 낮아지니까요. 취업을 미루는 한이 있어도 이력서에 자랑스럽게 쓸 수 있는 기업에 들어가려고 하죠. 실제로 중소기업 인턴 경험 후 대기업에 지원한 한 친구는 인턴 사실을 이력서에 쓰지 않았어요. 입사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여기더라고요.” 대학 졸업 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신모(28)씨는 수험생 생활을 적극 지원하는 부모님 덕에 부담 없이 공부에 몰입하고 있다. “부모님은 고용 불안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직접 체험하신 세대잖아요.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직장에 다니느니 정년이 보장된 일자리를 구하라며 오히려 시험 준비를 권하세요. 몇 년 정도는 비용을 대줄 테니 염려 말고 공부하라고요.” 대학(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후 각종 공모전 등을 거치며 글로벌 기업 구글에 입사, 그 경험을 ‘죽은 열정에게 보내는 젊은 Googler의 편지’란 책으로 펴낸 김태원씨는 입사 성공담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종종 강연회에 나선다. 그러나 강연회장에서 그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구글은 일찍 마쳐요?”다. “후배들을 보면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한계 짓고 안주하는 경향이 많아요. 직장 선택 기준도 ‘남들이 좋다는 곳’에 머물죠.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위험을 감수하다)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게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그는 “요즘 직장은 결코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며 “회사생활 외에도 얼마든지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요즘 친구들이 인정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좋은 직장에 목 매는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