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정치판의 희생제물이 되었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ㆍ신정아 학력위조사건 그 후 1년
지난해 7월8일, 언론을 통해 밝혀진 신정아씨 학력위조사건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다음, 구글 등의 포털에서 신정아란 이름은 2007년 검색어 1위를 차지할 만큼 가장 ‘걸출한’ 뉴스메이커였다. 윤심덕, 김수임, 정인숙, 장영자, 린다김 등 현대사를 장식한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그 어느 사건도 신씨 사건만큼 커다란 충격이나 파장을 일으키진 않았다. 지난해 7월4일 최연소 광주 비엔날레 미술감독으로 선정되어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그는 예일대학 박사학위 등 학력과 경력 위조, 그리고 연인인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 교수임용 및 각 분야에 도움을 준 것이 속속 밝혀지면서 거짓말쟁이 마녀로 추락했다.
어떤 이들은 신정아씨를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간교한 꽃뱀’으로 비난하는가 하면 서울대 조국 교수같은 이들은 ‘온갖 부정과 비리를 다 드러나게 해준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풍자적인 비판과 함께 ‘학벌만능시대의 희생자이자 또다른 잔다르크’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신씨 사건후 릴레이경기처럼 유명인사들이 학력위조를 고백했고, 대학과 학원가까지 교수나 강사들의 학력검증을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학벌만능 풍토를 개탄하는 논의가 도처에 활발했고 반성문이 줄을 이었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등 ‘거물급’의 사법처리도 잇따랐다. 1년이 지난 지금, 신씨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신데렐라의 탄생과 추락
신정아씨가 기획한 전시회에 협찬을 했던 모 그룹의 ㄱ상무는 신씨 사건후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협찬금과 관련된 일로 몇차례 검찰조사에 시달리기도 한 그는 ‘인간에 대한 불신감이 너무 커졌다’고 한다.
“신정아씨는 일에 대한 열정도 컸고 미술에 관한 지식도 풍부해 보였어요. 무엇보다 태도가 아주 싹싹하고 붙임성있어 중매까지 서려고 했는걸요. 오빠도 박사에 안동대 교수라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보습학원을 운영한다더군요. 순수한 표정으로 한 말이 모두 거짓말이고 사인까지 해준 박사논문도 가짜라니 이제 사람들에 대한 신뢰감을 잃었어요.”
ㄱ상무만이 아니다. 신정아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은 너무 많다.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중퇴. 미국 캔자스대 미술학사(서양화·판화 복수전공), 같은 대학 경영전문석사(MBA), 예일대 미술사학 박사(Ph.D.) 등 완벽하고 화려한 학벌을 앞세운 신씨는 동국대 조교수와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 내정자,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으로 맹활약했다. 훤칠한 키에 ‘에르메스의 여왕’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수시로 에르메스 넥타이나 감동깊은 선물을 하는 그를 거부할 이는 드물었다. 게다가 권력의 실세인 변양균 실장이 ‘홍도 오빠’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으니 세상은 너무 만만했을 게다. 대학총장도, 스님들도, 깐깐한 기자들로 그가 내세운 완벽한 이력서와 화려한 언변에 모두 넘어갔다.
물론 미술계와 불교계에서 신씨의 학력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2005년 동국대 임용 직전부터 조금씩 돌았고 지난해 2월에는 당시 전등사 주지 장윤 스님이 동국대 이사회에서 의혹을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씨의 욕심이 너무 컸다.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지만 그것이 곧 비극의 시작이었다.
신씨의 학력이 거짓임이 드러나면서 온갖 사생활까지 폭로되었다. 외제차에 명품으로 몸을 휘감으며 지인들에게 부잣집 딸이라고 자랑하던 그가 실제는 신용불량자라는 것. 변양균 실장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누드사진, 남자관계, 변 실장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물론 집에 있는 구두가 몇켤레인지까지 그야말로 올누드로 공개됐다. 신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학위 브로커에게 속았다”는 등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으나 결국 학력 위조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지난해 10월 구속되어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이 삼복더위도 교도소에서 보내고 있다. 법정에서도 그가 ‘내가 보호해줘야할 사람’이라고 말한 ‘권력형 게이트 의혹’의 핵심이었던 변 실장은 개인사찰인 울주군 흥덕사와 과천 보광사 등에 특별교부세를 지원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은 뒤 풀려났다. 김석원 전 회장은 계열사에 1600여억원을 부당지원하고 회사자금 7억여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가 지난 3일 1심 법원에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한편 동국대는 예일대가 2005년 신정아씨 관련 학력조회 요청에 잘못된 회신을 보내 큰 피해를 당했다며 올해 3월 하순 예일대를 상대로 한 5000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미국 코네티컷주 지방법원에 냈다.
대부분 무사한 학력위조자들
또 신정아씨의 학력위조 사건은 신씨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예술·연예 등 문화 예술계 전반에서 유명인들의 거짓 학력이 잇따라 드러났고 학력위조 파문은 광풍처럼 우리 사회를 휩쓸었다. 연극배우 윤석화 등이 숨겨왔던 비밀을 고해성사처럼 털어놨고 어떤 이는 언론이나 제3자의 의혹 제기로 거짓 학력이 드러났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대부분 무사하다.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의 경우 비인가대학에서 받은 학위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단국대 교수에 임용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까지 됐지만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김씨는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자신이 대표로 있는 동숭아트센터 업무를 보기 위해 사무실에도 가끔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페이지를 통해 스스로 허위학력을 고백했던 윤석화는 홍콩과 서울을 오가며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극장 정미소의 일을 보고 있는데 창작뮤지컬 ‘사춘기’를 내달 중 선보일 예정이다. 역시 오래전 허위학력 기재 사실을 고백했던 능인선원(강남구 포이동) 원장 지광스님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심형래의 경우 영화 ‘디워’ 개봉을 앞두고 허위 학력 논란이 일었지만 현재도 영화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장미희는 여전히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KBS 2TV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특유의 연기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최화정은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 강석은 MBC 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를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 최수종은 KBS 1TV ‘대조영’ 출연 당시 파문이 일었지만 꿋꿋이 연기를 했다. 오미희는 CBS 음악FM ‘오미희의 행복한 동행’, MBC TV 아침드라마 ‘흔들리지마’에 출연 중이다. 주영훈도 파문 이후 6개월가량 쉬다가 다시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러브하우스’의 건축가 이창하씨는 지난 5월 방송 출연해 “한때는 자살기도까지 생각했었다”고 고통스러웠던 심경을 밝히기도 했지만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신씨에게 미술감독을 맡겼던 광주비엔날레 한갑수 이사장도 무사하다. 또 신정아씨를 매스컴에 소개해 스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신씨가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밝힌 ㅈ일보 모 기자는 MB캠프를 거쳐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정청래 전 의원이 국회에서 ‘신씨가 쓴 자서전에 자신을 괴롭힌 남자들을 다 기록했다’고 했지만 담당 변호사가 ‘자서전은 없다’고 말해 안도의 숨을 내쉬는 이들도 많단다.
사건은 있고 교훈은 없다
왜 대한민국은 신정아 사건에 흥분했을까. 또 그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사회심리학자 최창호 박사는 “신씨 사건은 대중들이 선망하는 신데렐라 스토리,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의 로맨스, 문화예술계는 물론 권력층의 비리 등이 모두 복합된 비리백화점이자 호기심을 자극할 모든 요소를 갖추었기 때문에 전국민이 과도한 관심을 가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 사회평론가 홍현종씨는 “학력위조가 ‘화두’이긴 하지만 본질은 21세기의 남녀문제”라면서 “기존질서에 억눌렸던 신분상승의 욕구를 수단방법을 안가리고 쟁취하려는 여성과 권력을 가졌으나 점차 무력해지고 추락을 두려워하는 중년 남성의 젊은 여성에 대한 욕망이 빚어낸 드라마”라는 시각을 보인다.
반면 ‘정치적 측면’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김갑수씨는 이 사건을 “노무현정부의 실세가 주인공이니 그 정부를 공격하려는 것, 그리고 정치적 사안을 다른 관심으로 몰아 오락거리로 만들려는 세력이 조장한 것”이라고 본다. 즉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 부각된 BBK사건 등을 희석시키고, 민주당 경선을 아예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신정아·변양균 스캔들이란 ‘섹시한’ 이야기를 보수언론들이 타블로이드지처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룬 면이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본질은 사라지고 선정성만 남았으며 학력위조를 근절시킬 기회조차 놓쳐버렸다고 김씨는 주장한다. 신정아씨와 친분이 있었다는 가수 조영남씨는 “우리 누구나 제2의 신정아·변양균이 될 잠재 인자가 있다”면서 “자기가 자기를 속인 신정아씨에게 엄격한 질타와 돌을 던져 비난할 만한 자격이 있는 이들이 누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바로잡는 교정작업과 검증이 이뤄지고, 또 그것이 교훈으로 남아야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한다. 하지만 신정아사건 후로도 삼성특검, BBK, 대통령선거,미국 쇠고기 등 계속 펑펑 터지는 대형사건들, 어지간한 잘못은 고개만 숙이면 쉽게 용서해주고 잊는 우리 정서 때문에 사건은 그저 사건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니 신정아씨도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왜 나만 옥살이를 해야 하나” 하며 억울해하지나 않을까….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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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신정아 학력위조사건 그 후 1년
지난해 7월8일, 언론을 통해 밝혀진 신정아씨 학력위조사건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다음, 구글 등의 포털에서 신정아란 이름은 2007년 검색어 1위를 차지할 만큼 가장 ‘걸출한’ 뉴스메이커였다. 윤심덕, 김수임, 정인숙, 장영자, 린다김 등 현대사를 장식한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그 어느 사건도 신씨 사건만큼 커다란 충격이나 파장을 일으키진 않았다. 지난해 7월4일 최연소 광주 비엔날레 미술감독으로 선정되어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그는 예일대학 박사학위 등 학력과 경력 위조, 그리고 연인인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 교수임용 및 각 분야에 도움을 준 것이 속속 밝혀지면서 거짓말쟁이 마녀로 추락했다.
어떤 이들은 신정아씨를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간교한 꽃뱀’으로 비난하는가 하면 서울대 조국 교수같은 이들은 ‘온갖 부정과 비리를 다 드러나게 해준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풍자적인 비판과 함께 ‘학벌만능시대의 희생자이자 또다른 잔다르크’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신씨 사건후 릴레이경기처럼 유명인사들이 학력위조를 고백했고, 대학과 학원가까지 교수나 강사들의 학력검증을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학벌만능 풍토를 개탄하는 논의가 도처에 활발했고 반성문이 줄을 이었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등 ‘거물급’의 사법처리도 잇따랐다. 1년이 지난 지금, 신씨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신데렐라의 탄생과 추락
신정아씨가 기획한 전시회에 협찬을 했던 모 그룹의 ㄱ상무는 신씨 사건후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협찬금과 관련된 일로 몇차례 검찰조사에 시달리기도 한 그는 ‘인간에 대한 불신감이 너무 커졌다’고 한다.
“신정아씨는 일에 대한 열정도 컸고 미술에 관한 지식도 풍부해 보였어요. 무엇보다 태도가 아주 싹싹하고 붙임성있어 중매까지 서려고 했는걸요. 오빠도 박사에 안동대 교수라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보습학원을 운영한다더군요. 순수한 표정으로 한 말이 모두 거짓말이고 사인까지 해준 박사논문도 가짜라니 이제 사람들에 대한 신뢰감을 잃었어요.”
ㄱ상무만이 아니다. 신정아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은 너무 많다.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중퇴. 미국 캔자스대 미술학사(서양화·판화 복수전공), 같은 대학 경영전문석사(MBA), 예일대 미술사학 박사(Ph.D.) 등 완벽하고 화려한 학벌을 앞세운 신씨는 동국대 조교수와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 내정자,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으로 맹활약했다. 훤칠한 키에 ‘에르메스의 여왕’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수시로 에르메스 넥타이나 감동깊은 선물을 하는 그를 거부할 이는 드물었다. 게다가 권력의 실세인 변양균 실장이 ‘홍도 오빠’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으니 세상은 너무 만만했을 게다. 대학총장도, 스님들도, 깐깐한 기자들로 그가 내세운 완벽한 이력서와 화려한 언변에 모두 넘어갔다.
물론 미술계와 불교계에서 신씨의 학력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2005년 동국대 임용 직전부터 조금씩 돌았고 지난해 2월에는 당시 전등사 주지 장윤 스님이 동국대 이사회에서 의혹을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씨의 욕심이 너무 컸다.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지만 그것이 곧 비극의 시작이었다.
신씨의 학력이 거짓임이 드러나면서 온갖 사생활까지 폭로되었다. 외제차에 명품으로 몸을 휘감으며 지인들에게 부잣집 딸이라고 자랑하던 그가 실제는 신용불량자라는 것. 변양균 실장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누드사진, 남자관계, 변 실장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물론 집에 있는 구두가 몇켤레인지까지 그야말로 올누드로 공개됐다. 신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학위 브로커에게 속았다”는 등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으나 결국 학력 위조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지난해 10월 구속되어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이 삼복더위도 교도소에서 보내고 있다. 법정에서도 그가 ‘내가 보호해줘야할 사람’이라고 말한 ‘권력형 게이트 의혹’의 핵심이었던 변 실장은 개인사찰인 울주군 흥덕사와 과천 보광사 등에 특별교부세를 지원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은 뒤 풀려났다. 김석원 전 회장은 계열사에 1600여억원을 부당지원하고 회사자금 7억여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가 지난 3일 1심 법원에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한편 동국대는 예일대가 2005년 신정아씨 관련 학력조회 요청에 잘못된 회신을 보내 큰 피해를 당했다며 올해 3월 하순 예일대를 상대로 한 5000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미국 코네티컷주 지방법원에 냈다.
대부분 무사한 학력위조자들
또 신정아씨의 학력위조 사건은 신씨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예술·연예 등 문화 예술계 전반에서 유명인들의 거짓 학력이 잇따라 드러났고 학력위조 파문은 광풍처럼 우리 사회를 휩쓸었다. 연극배우 윤석화 등이 숨겨왔던 비밀을 고해성사처럼 털어놨고 어떤 이는 언론이나 제3자의 의혹 제기로 거짓 학력이 드러났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대부분 무사하다.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의 경우 비인가대학에서 받은 학위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단국대 교수에 임용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까지 됐지만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김씨는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자신이 대표로 있는 동숭아트센터 업무를 보기 위해 사무실에도 가끔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페이지를 통해 스스로 허위학력을 고백했던 윤석화는 홍콩과 서울을 오가며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극장 정미소의 일을 보고 있는데 창작뮤지컬 ‘사춘기’를 내달 중 선보일 예정이다. 역시 오래전 허위학력 기재 사실을 고백했던 능인선원(강남구 포이동) 원장 지광스님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심형래의 경우 영화 ‘디워’ 개봉을 앞두고 허위 학력 논란이 일었지만 현재도 영화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장미희는 여전히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KBS 2TV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특유의 연기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최화정은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 강석은 MBC 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를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 최수종은 KBS 1TV ‘대조영’ 출연 당시 파문이 일었지만 꿋꿋이 연기를 했다. 오미희는 CBS 음악FM ‘오미희의 행복한 동행’, MBC TV 아침드라마 ‘흔들리지마’에 출연 중이다. 주영훈도 파문 이후 6개월가량 쉬다가 다시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러브하우스’의 건축가 이창하씨는 지난 5월 방송 출연해 “한때는 자살기도까지 생각했었다”고 고통스러웠던 심경을 밝히기도 했지만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신씨에게 미술감독을 맡겼던 광주비엔날레 한갑수 이사장도 무사하다. 또 신정아씨를 매스컴에 소개해 스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신씨가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밝힌 ㅈ일보 모 기자는 MB캠프를 거쳐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정청래 전 의원이 국회에서 ‘신씨가 쓴 자서전에 자신을 괴롭힌 남자들을 다 기록했다’고 했지만 담당 변호사가 ‘자서전은 없다’고 말해 안도의 숨을 내쉬는 이들도 많단다.
사건은 있고 교훈은 없다
왜 대한민국은 신정아 사건에 흥분했을까. 또 그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사회심리학자 최창호 박사는 “신씨 사건은 대중들이 선망하는 신데렐라 스토리,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의 로맨스, 문화예술계는 물론 권력층의 비리 등이 모두 복합된 비리백화점이자 호기심을 자극할 모든 요소를 갖추었기 때문에 전국민이 과도한 관심을 가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 사회평론가 홍현종씨는 “학력위조가 ‘화두’이긴 하지만 본질은 21세기의 남녀문제”라면서 “기존질서에 억눌렸던 신분상승의 욕구를 수단방법을 안가리고 쟁취하려는 여성과 권력을 가졌으나 점차 무력해지고 추락을 두려워하는 중년 남성의 젊은 여성에 대한 욕망이 빚어낸 드라마”라는 시각을 보인다.
반면 ‘정치적 측면’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김갑수씨는 이 사건을 “노무현정부의 실세가 주인공이니 그 정부를 공격하려는 것, 그리고 정치적 사안을 다른 관심으로 몰아 오락거리로 만들려는 세력이 조장한 것”이라고 본다. 즉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 부각된 BBK사건 등을 희석시키고, 민주당 경선을 아예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신정아·변양균 스캔들이란 ‘섹시한’ 이야기를 보수언론들이 타블로이드지처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룬 면이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본질은 사라지고 선정성만 남았으며 학력위조를 근절시킬 기회조차 놓쳐버렸다고 김씨는 주장한다. 신정아씨와 친분이 있었다는 가수 조영남씨는 “우리 누구나 제2의 신정아·변양균이 될 잠재 인자가 있다”면서 “자기가 자기를 속인 신정아씨에게 엄격한 질타와 돌을 던져 비난할 만한 자격이 있는 이들이 누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바로잡는 교정작업과 검증이 이뤄지고, 또 그것이 교훈으로 남아야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한다. 하지만 신정아사건 후로도 삼성특검, BBK, 대통령선거,미국 쇠고기 등 계속 펑펑 터지는 대형사건들, 어지간한 잘못은 고개만 숙이면 쉽게 용서해주고 잊는 우리 정서 때문에 사건은 그저 사건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니 신정아씨도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왜 나만 옥살이를 해야 하나” 하며 억울해하지나 않을까….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